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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김지원 외 9인, 『에디터의 기록법』, 휴머니스트(자기만의 방)(2025)

△삼복△ 2025. 7. 2. 15:32

김지원, 김혜원, 김희라, 윤성원, 손현 외 5인, 『에디터의 기록법』, 휴머니스트(자기만의 방)(2025) - 표지 이미지
김지원, 김혜원, 김희라, 윤성원, 손현 외 5인, 『에디터의 기록법』, 휴머니스트(자기만의 방)(2025) | 이미지 출처: 알라딘 서점 상세페이지

- 제목:  에디터의 기록법: 읽고 싶은 콘텐츠를 만드는 에디터 10인의 노트
- 저자: 김지원, 김혜원, 김희라, 윤성원, 손현 외 5인
- 출판사: 휴머니스트(자기만의 방)
- 출간일: 2025년 03월 24일


문장을 잇는 사람들, 사람을 잇는 문장들

 

자신만의 글을 쓰는 사람들

『에디터의 기록법』은 총 열 명의 에디터가 참여한 쓰기에 대한 책이다. 2024 3,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쓴 인스피아 발행인 김지원 에디터는 1년 만에 이전 책에서 미처 풀지 못했던 쓰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며 『에디터의 기록법』의 시작을 연다. “나는 결코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쓰고, 혼자 헤매기 위해 기록한다고 고백한 김지원 에디터는 글쓰기 이전에 탐색과 관찰에 집중하여, 남에게 내보일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이전에 이뤄지는 과정 그 자체(메모)’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주 책에 대한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김지원 에디터가 메모를 적는 기준은 명확하다. “책 내용에 아주 일부라도 파고들어 볼 요소가 있다면 탐색해 나간다. 그에게 메모를 적는다는 것은 그 책과 저자의 세계관을 탐색하고 관찰한 흔적이다.

이 책에서는 김지원 에디터를 비롯해 많은 에디터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깊은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생각할 만한 글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감정을 움직이는 글은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고, 바깥을 향한 관점을 확장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게 타인, 외부 세계와 이어져 소통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마련하는 데서 자기의 글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기억에 남지 않고 흘러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메모라는 쓰기의 방식은 많은 에디터에게 글쓰기의 소재가 된다. 필진들은 감상, 질문, 구조도, 발췌문을 작은 지면에 짧은 기록으로 습관처럼 남긴다. 그리고 이 단편적인 메모들은 씨앗처럼 에디터마다의 양식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입은 한 편의 긴 글로 피어난다.

 

사람마다 다른 글쓰기 방법

쓰기가 주제인 만큼 이 책에 필진으로 참여한 10인의 에디터는 각자의 글쓰기 메커니즘도 소개한다. 먼저, 필진 중 윤성원 에디터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류의 발전은 기록 위에서 이루어진 셈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뇌 밖에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머릿속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지만, 글로 새겨 둔 정보와 감정, 그리고 기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기록이 가진 힘을 잘 보여 준다.

윤성원 에디터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1) 그 넘쳐나는 콘텐츠 중에서 어떤 콘텐츠를 볼 것이냐, 2) 창작자로서 나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이냐는,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콘텐츠를 본다는 것은 그 콘텐츠를 만든 사람과 연결되는 과정이고,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내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콘텐츠를 보기 위해,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이 복잡한 시대에 자신의 삶을 좋은 연결로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며, 자신이 자주 접하며 세상과 주고받는 콘텐츠의 수준이 연결의 퀄리티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그는 이어 좋은 콘텐츠를 재료로 한 발췌+요약+리라이팅이 곧 좋은 콘텐츠 제작 연습이라고 소개했다. ‘발췌+요약+리라이팅은 자신이 본 좋은 콘텐츠의 일부를 잘라내고, 정리하고, 생각을 덧붙이며, 그 과정에서 즐겁게 읽거나 경험한 콘텐츠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요약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을 꾸준히 거치다 보면 당연히 자기 글을 쓰는 것도 점점 쉬워지고, 자신의 기준과 관점이 명확해지며, 핵심이 무엇인지를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한편 손현 에디터는 자신이 글을 쓰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글에 담을 내용을 모두 나열하고 - 생각이 흐르는 대로 끝까지 쓴 다음 - 번호를 붙이면서 순서를 다시 맞춘다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은 소설이나 시나리오의 플롯을 재배치하는 것과 무척 유사하다. 그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끝까지 쓰기라고 강조했다. 논리가 엉성하거나 불완전해도 첫 생각과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면 끝까지 써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인용하며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이미 내면에 존재하는 글쓰기의 잠재력과 씨앗을 끌어내는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이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키보드보다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추천하며, J.K. 롤링과 크리스토퍼 놀란을 예로 들어 손으로 쓰기의 장점을 설명한다.

캐릿의 편집장 김혜원 에디터도 손으로 쓰기를 중요하게 다뤘다. 그는 오프라인 경험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쓴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부기능을 대체하는 것일 뿐 실제와는 다르다고 말하며, 종이 노트에 손으로 쓰고 구조를 그려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얼핏 낙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각기 다른 사례의 공통점을 찾아 같은 주제로 묶거나, 관성적으로 뭉뚱그려 놓은 묶음 사이에서 차이점을 찾아 선을 긋고 분류하는 작업이 되며, 이것이 에디터만의 시각이 담긴 뻔하지 않은 글을 만든다.

좋은 책이나 영화 등의 콘텐츠를 보고 메모를 남기는 것만큼 일상을 기록하며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 역시 글의 좋은 단초가 된다. 김희라 어피티 편집장은 일기 쓰기를 통해 시간과 불안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었다. 그는 가끔이라도 차분히 하루를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고, 날짜 감각이 흐려진 채 시간을 자루에 담아서 포대째 쓰는 데 익숙해지고 있었다, 매일 일기를 쓰며 인간의 불안이란 빠르게 달려 어딘가에 도착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으며, 다만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알아차림으로써 비로소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희라 에디터는 대화가 필요할 땐 자기 자신과 나누어도 된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진심으로 앞으로의 인생이 조금 덜 걱정되는 것을 느꼈다고 말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어쨌든 대화여서, 언제나 그 결과는 오간 말의 합보다 크다는 사실이다.

전 토스 콘텐츠 매니저이자 에세이 작가인 손현은 일상과 글쓰기의 관계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설거지, 청소, 세탁, 빨래 개기, 육아등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을 나열한 후, 중요한 깨달음을 제시한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것들이 내 글쓰기를 방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위에 나열한 것은 남의 일이 아닌, 모두 나의 일이다. 실은 내가 응당 해야 하는 것들이다. 관점을 바꾸면 글쓰기를 방해하는 모든 것이 내 일상이자 삶이라는 것이다.

김지원 에디터는 수많은 창작자에게 읽기(보기, 관찰하기)와 쓰기(메모 기록, 혹은 작품)는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말대로 창작자에게 읽기와 쓰기는 돌고 도는 하나의 흐름인 것 같다. 창작의 단초가 될 조각들을 일상적으로 메모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생각과 상상들, 그리고 이것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다른 메모들이 하나로 뭉쳐지며 연결되고 증폭하여 어느새 양감을 띠게 되면 그것이 곧 작품이 된다.

 

읽기와 쓰기의 연결

『에디터의 기록법』에 참여한 필진들의 이야기를 쭉 읽다 보면 읽기와 쓰기는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점이 나온다. 읽고, 거기서 느낀 것을 기록하며, 그 메모를 재구성해 글로 옮기는 과정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 생각의 출발점이며, ‘쓴다는 것은 그 감각을 붙들어 구체화하는 행위다.

김지원 에디터는 혼자만 읽겠다 작정하고 쓰는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일단 혼자만 읽겠다고 작정하고 쓰는 메모들은 이런 식으로 가장 간결하고, 가장 편견적이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읽고 난 직후 밀려나오는 뼈다귀들을 가장 사랑하게 된다고 말한다. 정제되지 않은 문장 속에 차근차근 살을 붙여 가는 일이 곧 창작이란 뜻으로 읽힌다.

기록은 처음에는 내밀한 행위이지만, 끝에는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거는 행위가 된다. 글을 쓰는 이들이 저마다 모은 문장들은, 독자에게 읽히며 연결된다. 결국 좋은 연결은 짧은 메모 한마디에서 시작되며, 그것이 세상과의 다리를 놓는다.

읽기와 쓰기를 잇는 가장 중요한 다리는, 타인의 문장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경험이다. 그 경험은 곧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기 위한 문장을 쓸 수 있게 도와준다. 좋은 문장을 이어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간을 들여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며 깊게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관점을 발견하고,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노력해 써 낸 글로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고, 그 누군가의 삶과 감정에 좋은 영향을 주며 순환한다면 그게 좋은 콘텐츠라 생각한다.

『에디터의 기록법』은 읽기와 쓰기, 그 순환 속에 계속 문장을 잇는 사람들의 개성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좋은 참고서다. 이 책을 읽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다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순간, 나만의 창작 루틴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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