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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1849)] 의료계에 진출한 최초의 여성: 엘리자베스 블랙웰

△삼복△ 2025. 7. 5. 14:39

1849 1 23, 엘리자베스 블랙웰, 미국 최초로 의사 면허를 취득한 여성이 되다

 

1974년 미국에서 발행된 엘리자베스 블랙웰 우표.
1974년 미국에서 발행된 엘리자베스 블랙웰 우표. (Elizabeth Blackwell · First Woman Physician Stamp) |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불가능에 도전한 한 여성이 만든 미국 현대 의학사

1849 1 23일은 미국 의학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이날 엘리자베스 블랙웰이 뉴욕 제네바 의과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받으며 미국 최초의 여성 의사로 공식 등록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수세기 동안 여성에게 굳게 닫혔던 의학계의 문이 열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녀의 도전은 여성의 교육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위한 선구적인 투쟁의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 전 세계 여성 의료인들의 길을 열어준 출발점이 되었다.

 

배경 -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던 의학의 영역

19세기 중반 미국 사회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극심한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모성과 도덕성을 담당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묶여 있었다. 특히 의학 분야는 남성 전유물로 여겨졌으며, 여성이 해부학이나 생식기관과 관련된 학문을 배우는 것은 여성의 도덕성을 해친다는 편견이 팽배했다. 하버드 의대 학생들은 진정한 여성이라면 의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여성의 입학을 반대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여성의 지원 자체를 허용하지 않았고, 환자들조차 여성이 진료를 본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의학이 전문화되고 제도화되던 시기였지만, 동시에 여성에게는 의학 교육과 직업 활동의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던 시대였다.

1821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블랙웰은 183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교사로 일하던 중, 친구가 부인과 질환으로 고통받으며 여성 의사가 있었다면 더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 한탄하는 걸 듣고 의학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회 배경상 이는 단순한 개인의 직업 선택을 넘어, 여성 환자의 고통과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전개 - 거절과 조롱을 딛고 선 역사적 성취

   1845: 블랙웰은 의학 교육을 받기 위해 미국 전역의 의과대학에 원서를 제출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일부 학교는 오히려 조롱 섞인 편지를 보내며 그녀의 시도를 모욕했다.

   1847: 수십 곳의 거절을 받은 후, 마침내 뉴욕 제네바 의과대학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학장과 교수진은 여성 지원자 문제를 놓고 학생들에게 투표를 맡겼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장난 삼아 찬성표를 던지면서 블랙웰은 입학 허가를 받았다.

   1847 11 6: 제네바 의과대학에 입학한 블랙웰은 동료 학생들과 지역 주민들로부터 냉대와 조롱에 시달렸다. 해부학 실습에서는 여성에게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따로 커튼을 쳐 주거나 아예 실습실 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학업에 몰두하여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점차 동료 교수들의 인정을 받아 갔다.

   1849 1 23: 제네바 의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블랙웰은 학장 찰스 리로부터 직접 의학 학위를 받으며 미국 최초의 여성 의사로 공식 등록되었다. 이날 그녀의 졸업은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 졸업 논문(장티푸스 논문)은 미국 여성 최초로 발표된 의학 논문이 되었다.

 

결과와 변화

그럼에도 미국 내 병원들은 그녀를 채용하지 않았다. 환자들 역시 이전에는 전무했던 여성 의사를 불신했다. 그러나 블랙웰은 시대상에 굴복하지 않고, 프랑스와 영국으로 건너가 심화된 의학 공부를 이어 갔다. 파리의 라 마테르니테 병원에서 산부인과 실습 중 감염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는 사고를 겪었지만, 의학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블랙웰의 성취는 광범위한 변화를 불러왔다. 1853년 그녀는 여동생 에밀리 블랙웰과 마리 잭슨과 함께 뉴욕에 여성과 아동을 위한 진료소를 설립했다. 이 진료소는 1857년 병원으로 확장되어 여성 의료 전문가를 양성하고 여성과 아동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861년 남북 전쟁이 일어나자 부상병들의 간호와 치료에 정성을 기울이는 동시에 간호사 양성에 힘쓰며 여성 의료인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했다.

1868년에는 미국 뉴욕주에 병원 부속으로 여성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여성 의사 양성에 직접 나섰다. 이곳에서 그녀는 위생학과 예방의학을 가르치며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875년 런던으로 돌아간 후에는 런던 여성 의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 의학 교육 확대에 힘썼다블랙웰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확산되었다. 그녀의 행보는 미국과 유럽의 여성 단체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의학을 포함한 다양한 전문 분야에 진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현대에도 그녀의 영향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25년 현재 미국 의과대학 신입생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한국의 경우 전체 의사 중 여성 의사의 비율이 약 27%에 달한다. 매년 2월 초 미국과 영국에서는 “Women in Medicine Day”를 기념하며, 여성 의학자에게 그녀의 이름을 딴 명예로운 상 블랙웰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선구자의 유산

1849 1 23일은 엘리자베스 블랙웰이라는 선구자가 성별에 따른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물고, 여성의 교육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쟁취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을 확대하고 공중 보건의 중요성을 일깨웠으며, 여성과 아동을 위한 특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현대 의료 시스템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블랙웰의 도전은 거절과 조롱, 차별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단호한 신념과 실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그녀가 세운 진료소와 의과대학은 지금도 여성 의료인의 교육과 사회 진출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그녀의 정신은 의료계 다양성과 포용성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현재에도 유리천장에 맞서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블랙웰의 이야기는 여전히 강력한 영감을 주고 있으며, 여성 서사의 소재로도 주목받고 있다. 2025년 네이버의 웹소설 플랫폼 시리즈에서도 가상의 배경에 해당 시대상을 살짝 가미한 작품, 『케일리 델러웨어 사건 일지』가 론칭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블랙웰은 의학의 역사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의 역사에도 귀한 유산을 남겼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미래 세대에게 선택의 기회를 선사한 블랙웰은 진정한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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