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1990)]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ANC 해금과 만델라 석방 선언

1990년 2월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체제가 종식되다

 

악수를 나누는 프레데리크 드 클레르크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 Copyright: World Economic Forum(https://www.flickr.com/photos/15237218@N00/963931930/)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 체제의 종식

1990년 2월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회 개원식에서 프레데리크 드 클레르크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은 남아공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30여 년간 불법화되어 있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를 비롯한 저항 조직들의 해금과 27년간 수감되어 있던 넬슨 만델라의 석방 예정이 공식 발표된 것이다. 이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극단적인 인종차별 체제의 종식을 알리는 서막이었고, 남아공이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배경 - 압박과 저항의 교차점

1948년 남아공 국민당 정부가 공식화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사회 구성원 중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철저히 분리·차별하는 제도였다. 흑인들은 거주지 이전, 투표권, 교육, 보건, 고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제한을 받았다. 이에 맞서 1912년 창립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는 저항운동의 중심에 섰다.

넬슨 만델라는 처음엔 간디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 저항을 주도했지만, 1960년 샤프빌 학살(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저항하는 평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 이후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ANC의 무장 조직인 ‘움콘토 위 시즈웨(민족의 창)’ 창설에 기여했고, 1962년 체포되어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7년간 로벤섬에서 수감 생활을 하며 아파르트헤이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상황은 1980년대 들어서면서 급변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남아공 정부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비난하고 제재를 촉구하였고, 이로 인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와 외교적 고립이 본격화되었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20여 국가가 남아공에 무역, 금융, 투자 제재를 법제화했다. 1985년 외국 자본이 대량 유출되고 주요 외국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중단하면서 남아공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1976년 일어난 소웨토 봉기(남아공 정부가 발표한 ‘아프리칸스어 교육령(학교 수업을 백인들의 언어로 진행하는 법령)’에 반발해 일어난 대규모 학생 시위) 이후 흑인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과 봉기가 확산되었다.

 

전개 - 해방을 향한 시간들

●   1989년 9월

보수적 백인 정당인 국민당 소속이었으나 현실주의적이며 개혁 지향적인 성향을 가진 프레데리크 윌렘 드 클레르크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직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국제적 고립과 국내 혼란 속에서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경제 제재와 사회 불안, 국제 사회의 압박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그는 체제의 존속보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더 낫다는 전략적 현실주의를 택했다.

취임 몇 주 후, 그는 비밀리에 감옥에 수감 중인 넬슨 만델라와 면담을 갖고, 동시에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부와도 비공식 접촉을 시작했다. 이는 극심한 적대 관계에 있던 백인 정부와 흑인 저항운동 간 최초의 정치적 대화의 물꼬였다.

●   1990년 2월 2일

드 클레르크 대통령은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세계를 놀라게 할 중대한 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그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및 기타 반정부 조직의 전면 합법화

-      정치범 석방을 위한 절차 착수(여기에는 넬슨 만델라도 포함되었다)

-      언론 자유 확대 및 긴급조치법 철폐

“우리의 미래는 개방성과 협력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과거는 우리를 정의하지 않아야 하며,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희망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드 클레르크

이 발표는 단순한 정책 변경이 아닌 제도적 인종차별 체제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공식적 철회의 신호로 해석되었다. 또한 이날은 남아공판 ‘베를린 장벽 붕괴’로 불리며, 세계 언론은 그를 “용기 있는 개혁가”로 주목했다. 하지만 동시에 보수 백인층의 강한 반발도 불러일으켰기에 그의 결정은 정치적 모험이자 도박이기도 했다.

●   1990년 2월 11일

드디어 넬슨 만델라가 27년간의 옥고를 마치고 빅터 버스터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전 세계는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TV 앞에 모였고, 남아공 시민 수천 명이 케이프타운 거리로 나와 “아만들라!(힘을!)”를 외치며 환호했다.

넬슨 만델라는 석방 직후 연설에서 복수보다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의 태도는 세계인의 지지를 받았다.

●   1990년 5월 4일

ANC와 남아공 정부는 최초의 공식 협상문서인 ‘흐로터스휘르 의사록(Groote Schuur Minute)’을 체결했다. 이 합의는 정치범 석방, 망명자 귀환,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 등을 명문화함으로써 폭력 대신 대화를 택한 첫 이정표가 되었다.

이후 ANC는 무장투쟁 중단을 조건으로 협상에 임했고, 정부는 그 대가로 지속적인 정치 개혁과 권력 이양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과정을 통해, 남아공은 아프리카 역사상 보기 드문 평화적 정권 이양의 길을 걸었다.

●   1994년 4월

남아공 역사상 최초로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적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3,000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들이 투표소 앞에 줄을 선 모습은 전 세계에 감동을 주었다. 이 선거에서 ANC가 압승을 거두었고, 넬슨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리는 공포에서 해방되었고, 우리 시대의 진정한 기적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결코 다시는 이 땅에서 누군가가 피부색 때문에 억압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 넬슨 만델라

 

결과와 변화

●   정치적 변화

ANC는 정당으로 재조직되어 정치에 복귀했고, 342년 백인 통치와 46년 아파르트헤이트의 종말을 고했다. 1994년 첫 완전한 민주 선거를 통해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무지개 국가(Rainbow Nation)’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립하여 과거의 인권 침해를 조사하고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가 통합을 추진했다.

●   사회적 변화

법적 인종차별이 폐지되고 모든 인종에게 동등한 권리가 부여되었다. 흑인들의 거주 이전, 투표권, 교육, 보건, 고용 등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하지만 경제적 불평등과 실업, 범죄율 등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유산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   국제적 변화

남아공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했다. 이 사건은 전 세계 인권·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비폭력 전환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았다. 국제 사회의 일관된 압력과 연대가 독재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평화적 변화의 가능성

1990년 2월 11일 석방된 넬슨 만델라와 ANC의 해금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인류 역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2025년 현재 남아공은 여전히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에 직면해 있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승리이자 평화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의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법적 인종차별의 철폐와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정치적 의의. 둘째, 복수가 아닌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가 재건이라는 사회적 의의. 셋째, 불의에 저항하는 전 세계 인권 운동에 영감을 주었다는 국제적 의의이다.

드 클레르크의 용기 있는 결단과 만델라의 관용적 리더십, 그리고 ANC를 비롯한 수많은 남아공 국민들의 끈질긴 저항이 만들어 낸 1990년 2월 2일의 선언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불의에 맞서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는 어떤 견고해 보이는 차별과 억압도 결국 정의와 평화의 힘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 역사적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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