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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추천]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유유(2024)

△삼복△ 2025. 7. 15. 14:28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유유(2024) - 표지 이미지
김지원,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유유(2024) | 이미지 출처: 알라딘 서점 상세페이지


- 제목: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 저자: 김지원
- 출판사: 유유
- 출간일: 2024년 03월 04일


 

삶의 주체성을 살리는 독서

 

텍스트 트렌드가 진짜 왔나?

몇 년 전부터 텍스트힙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출퇴근길 버스에서 책을 펴 드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꼭 눈에 띈다. 어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진짜 텍스트 트렌드가 온 건가? 처음엔 이 텍스트힙이라는 게 성인 ADHD나 청소년 문해력 이슈가 사회를 한바탕 쓸고 지나가며 디지털 디톡스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그 파도가 밀려난 바닥에 새겨져 있는 독서의 중요성이 ― 잊을 만하면 한 번씩 ― 드러나는 평범한 흐름 끝에 나온 짧은 유행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생활에서 독서 인구를 직접 보게 되니 반가우면서도 그들이 독서를 지속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 대중교통에서 마주치는 독서인들이 손에 들고 있는 건 보통 종이책이다. 책 읽는 사람들한테 나도 모르게 눈이 가서 책의 종류를 혼자 몰래 좀 엿보는데, 한두 주에 한 번씩은 책이 바뀌는 것 같다. 이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2000년대 후반에도 언급되던 논술 주제가 전자책의 시대가 오고 종이책은 사장될 것인가?’였는데, 종이책이란 매체는 여전히 단단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돌아보자면 출판 시장은 90년대 후반부터 늘 불황이었고, 아마도 그 현상이 꾸준히 유지되며 절대 망하진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북과 종이책 모두를 구입하는 일종의 스위치 독자인 나부터 종이책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 때문에 종이책 소비를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편안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심리적 기제 때문에 오는 걸까?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두 가지 의문을 시원하게 해소해 줬다. 김지원 저자는 이 책에서 지식을 전하는 도구로의 종이책을 이야기했고, 책을 덮은 후엔 이북을 수십 권 사 놓고도 좀 읽다가 괜찮다 싶으면 종이책으로 다시 사는 서글픈 호구로서, 이 미련한 소비 패턴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책이라는 도구의 효용성

김지원 저자는 도구의 개념을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가장 적합하게 보조해 주는 장치로 정의하고 질문을 던진다. “과연 스마트폰은 좋은 읽기 도구일까?” 이 물음에 먼저 따져 봐야 하는 건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읽는 글의 종류일 것이다.

가령 지금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다고 하자. 날이 유독 습하고 꿉꿉하게 느껴진다면 먼저 날씨를 검색할 것이다. 대략적으로 날씨 예보를 확인하고 일어나 씻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며 오늘의 할 일을 한 차례 훑어본다. 그리고 보통 출근길 대중교통에 올라 SNS나 커뮤니티에 들어가 최근 이슈, 간밤의 화젯거리, 관심 있는 분야의 숏폼 영상을 휘둘러보다 보면 업무에 들어간다. 업무 중에 필요한 정보는 검색을 통해 확인하거나 몇몇 서류를 꾸리는 데 참고하기도 한다. 일과 후 퇴근길에 다시 SNS를 훑어보거나 웹소설이나 웹툰을 보는 게 취미라면 퇴근 시간에 맞춰 업로드된 최신화의 스토리를 후루룩 즐긴다. 그리고 저녁부터 잠들기 전까지 온갖 인터넷 게시물들과 숏폼들을 유영하다 하루가 저문다.

이 짧은 나열에서도 느껴지듯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는 글은 주로 확인하고, 훑어보고, 휘둘러보고, 참고하고, 후루룩 즐기는 콘텐츠다. 그것도 인터넷 플랫폼이 트래픽을 확보하기 위해 주로 자극적인 방식으로 눈길을 끄는 글을 우선 노출한 결괏값을 접하게 된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서는 이렇게 접하는 인터넷에 있는 대부분의 텍스트는 정보라고 말하며, 책에 수록된 글은 수많은 정보 가운데 편집되고 검증되고 목적에 맞게 재조직된 것이 지식이라고 설명한다. 책에서는 의도적으로 가꾸고 관리하고 가치 있는 것을 선별해 보관하고 찾기 쉽게 정리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에, “겉보기엔 단지 매체가 다를 뿐, 종이책과 인터넷의 텍스트가 같게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언급은 종이책이라는 도구가 ‘주로 책의 형태로 제공된 텍스트가 신실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제공한 진실한 읽기 경험및 그것을 가능하게 한 진심 어린 헌신·열정·노동을 통해 효용성을 갖춘다는 말로 이해됐다. 저자는 스마트폰은 글을 집중해 곱씹어 읽기엔 적합한 도구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나오미 배런의 “텍스트에 적합한 속도와 적합한 읽기 환경이란 말을 인용하여 글의 종류에 따른 읽기 속도와 방식에 대해 어떤 책은 연필을 들고 곱씹듯이, 단순 정보나 소식 등은 슥 훑어보듯이 읽으면 된다고 설명한다.

 

즐거운 읽기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것

인터넷상에 떠도는 정보들을 헤치고 다니다 보면 기가 빨린다. 앉은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피로해지는 건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인 탓도 있겠지만, 인터넷상에 댓글 형태로 흩뿌려진 각종 혐오감들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에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며 본 글이라고는 포털 메인에 뜬 헤드라인을 클릭해 들어간 인터넷 뉴스, 궁금한 걸 검색해서 나온 블로그 글이나 커뮤니티 글, 알고리즘으로 내 타임라인에 들어온 SNS 글이 다인데, 그 사이에 주제와 관련도 없는 막말 댓글이나 성인만화 플랫폼의 광고 이미지, 자극적인 처럼 시작하는 ― 광고주 출판사가 컨펌했을 도서 홍보 ― 광고 피드, 어제 검색했던 휴대용 선풍기 광고 배너가 끼어든다.

반면 책을 펼쳐 들었을 때는 중간에 눈치 없이 끼어드는 광고나 이미지 같은 게 있을 수 없다. 온전히 내가 읽고 싶고 궁금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저자의 말대로, “평소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밀도 높고 흥미로운 시각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시각적 방해 없이, 나의 관심사에 온전히 몰입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즐거움은 분명 독서에서만 얻을 수 있는 휴식이다.

그렇다면 독서를 권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독서는 즐거운가? 당연한 질문이다. 저자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사람은 논리로만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활동이든 당연히 재미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아무리 머리로 이점을 이해하고 있어도 재미가 없으면 작심삼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 독서가 즐거운 취미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자신의 취향만 제대로 안다면 얼마든 재미있는 책을 고를 수 있다고 대답해 주고 싶다. 만약 여기에서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게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스친다면, 괜찮다. 취향은 원래 망해 봐야 생기는 거니까, 일단 도서권으로 가 보는 걸 추천한다. 한번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 본다면 독서는 즐거운 취미가 되고 당신은 읽기를 훨씬 좋아하게 될 것이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 독서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도서가 열 가지 큰 분류로 나뉘어 서가마다 정리되어 있다. 보통 책등 하단에 색깔별로 구분해서 세 자리 숫자가 붙어 있는데, 아주아주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0으로 시작하면 백과사전이나 온갖 학술지, 국가별 신문 같은 게 있고, 1로 시작하면 철학, 2로 시작하면 종교, 3으로 시작하면 사회, 4로 시작하면 과학, 5로 시작하면 기술, 6으로 시작하면 예술, 7로 시작하면 언어, 8로 시작하면 문학, 9로 시작하면 역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이번 기회에 『해리포터』를 한번 읽어 봐야겠다 하고 도서관에 들어갔다면, 책꽂이(서가)를 휙 둘러보다가 800이란 숫자가 눈에 띄면 그리로 직진하면 된다.

도서관 서가는 이렇게 주제별로 느슨하게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아 보는 사이 반드시 ?’ 하는 제목을 만나게 된다. 유독 시선을 끄는 제목이 많은 서가로 들어섰다면, 그 주제가 바로 당신의 취향일 수 있다. 일단 궁금하고 흥미가 동해야 읽고 싶은 마음도 드는 법이기 때문에, 이렇게 일단 도서관 한 바퀴를 돌며 자신의 대략적인 취향을 찾는 일을 선행하면 독서를 시작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관심이 가는 책이 있다면 빼서 겉면도 이리저리 구경하고 목차도 살펴보고 거기에서 궁금한 페이지를 펼쳐 한두 장 읽어 보라. 책 안의 세계는 글쓴이의 세계다. 그렇기에 저자의 세계관을 일단 잠자코 들어 볼 필요가 있다. 간혹 나와는 다른 생각, 배경지식, 세계관이 부딪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읽고 있는 글이 너무 재미가 없고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자꾸 떠오르며 미련이 생긴다면 굳이 끝까지 읽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자신과 안 맞는 걸 찾는 것도 취향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취향을 찾는다는 건 바쁜 일상과 해내야 하는 과업 틈에 끼어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잃어 가고 있는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 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아야 뭘 선택하고 뭘 선택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취향은 사람의 개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게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자신의 주변을 좋은 것으로 채워 가며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독서는 자신의 취향을 찾아 가는 동시에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에 다채로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만약 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의 선택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독서를 시작해 보길 강력히 추천한다. 세상을 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시작으로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일단 얇고, 친절한 저자가 이해하기 쉽게 쓴 문장들이 논리적으로 잘 엮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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