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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1867)] 얼음 속에 숨겨진 보물 : 미국의 알래스카 구입

by SamBok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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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 3 30, 얼음 속에 숨겨진 보물 : 미국의 알래스카 구입

 

1867년 알래스카 구입에 사용한 720만 달러 수표 원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1867년 알래스카 구입에 사용한 720만 달러 수표 원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소장. |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CC0 1.0)

 

1867 3 30일 새벽 4, 워싱턴 D.C.의 한 집무실에서 역사적인 거래가 성사되었다.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약 152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광대한 영토를 720만 달러에 구입했다. 한반도의 7.5배가 넘는 면적을 1제곱킬로미터당 불과 5달러도 안 되는 헐값에 사들인 것이다. 당시 미국 언론과 국민들은 이 거래를 수어드의 바보짓’, ‘수어드의 아이스박스라며 맹비난했다. 하지만 30년 후 금광이 발견되고, 석유와 천연가스가 쏟아지면서 이 거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영토 확장으로 재평가되었다. 쓸모없는 얼음 땅으로 여겨졌던 알래스카는 어떻게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을까.

 

배경 - 두 국가의 셈법

19세기 중반, 러시아 제국은 북아메리카 북서부에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이어진 크림전쟁에서 패배하며 막대한 재정난에 시달렸다. 전쟁 비용으로 국고가 바닥났고, 농민 반란까지 일어나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이 크림전쟁 중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 일대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령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던 알래스카를 방어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7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군대를 보낼 방법도, 여력도 없었다. 영국에게 아무런 보상 없이 빼앗기느니 차라리 돈이라도 받고 파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섰다.

한편 미국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이념 아래 서부로의 확장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1848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미국은 태평양 연안 국가로 발돋움했다. 이제 북태평양과 북극해로 진출하려는 야심이 생겼다. 남북전쟁(1861~1865)으로 한때 외교적 여유가 없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국무장관 윌리엄 H. 수어드는 영토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수어드는 링컨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정적이었지만, 링컨이 그를 국무장관에 임명하며 두 사람은 협력 관계를 맺었다. 링컨 사후 앤드루 존슨 대통령 아래에서도 수어드는 국무장관직을 유지하며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이미 알래스카의 자원 가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18세기부터 모피 무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금광의 존재도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정학적 현실은 냉혹했다.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처음에 영국에 팔려고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 영국 입장에서는 캐나다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의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공작에게도 제의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결국 러시아는 남북전쟁 당시 우호국이었던 미국에 눈을 돌렸다.

 

전개 - 밤샘 협상에서 성조기 게양까지

    1859년경

러시아가 미국에 알래스카 매각 가능성을 처음 타진했다. 러시아 주미 대사 에두아르트 드 스토클이 국무부 차관보와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에게 접촉해 매각 의사를 밝혔다. 당시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갔지만, 대통령은 500만 달러를 넘으면 안 된다는 답을 내놓았다. 사실상 거절이었다.

    1861~1865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외교적 여유가 없었다. 알래스카 협상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수어드 국무장관의 외교적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1866

전쟁이 끝나고 앤드루 존슨 정부가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러시아는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알래스카 매각 의사를 표명했다. 수어드는 즉각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알래스카가 북태평양 진출과 영국 견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했다.

    1867 3월 초

러시아의 스토클 대사와 수어드 국무장관 사이에 본격적인 비밀 협상이 시작되었다. 수어드는 500만 달러를 제시했지만, 스토클은 720만 달러를 요구했다.

    1867 3 30 - 새벽 4

밤샘 협상 끝에 양측은 720만 달러에 합의했다. 워싱턴 D.C.에서 알래스카 매매 조약(Treaty of Cession)이 정식 서명되었다. 152만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1에이커당 2센트, 1,200평당 2원 꼴로 구입한 것이다.

    1867 4 9

미국 상원에서 조약 비준 투표가 열렸다. 상원의장 찰스 섬너는 알래스카의 역사, 기후, 자연, 인구, 자원을 상세히 설명하며 지지 연설을 펼쳤다. “두려움을 모르는 항해자들이 떼지어 해안으로 움직여 갈 것이며, 상업이 새로운 무기를 찾을 것이고, 국가는 새로운 방어자를 찾을 것이다.” 투표 결과 37 2로 조약이 압도적으로 승인되었다.

    1867 4~1868 7

상원 비준은 통과했지만, 하원에서 예산 승인을 받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언론과 국민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얼음이 가득한 궤짝에 왜 그런 거액을 쓰느냐”, “북극곰 정원을 사서 뭐 하려는가라는 조롱이 쏟아졌다. 수어드는 바보짓을 저지른 장관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1868 7월에야 하원에서 113 48로 예산 승인이 떨어졌다.

    1867 10 18

알래스카의 공식 인수식이 당시 수도였던 시트카에서 거행되었다. 러시아군과 미군이 총독 관저 앞에 도열한 가운데 예포가 울려 퍼졌다. 러시아의 알렉시스 페스트초로프 대위가 러시아 황제의 권위로 알래스카 영토를 미국에 인도하겠다고 선언했고, 러벨 로소 미군 장군이 이를 받아들였다. 러시아 국기가 천천히 내려가고 미국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이날은 현재 알래스카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제퍼슨 데이비스 장군이 초대 총독으로 부임했고, 몇몇 상인과 종교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러시아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갔다.

 

결과와 변화

알래스카는 처음에는 군사부대와 해군, 재무부가 관할하는 불명확한 지위였다. 1884알래스카 지구가 만들어지고, 1912알래스카 준주로 승격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위협과 알래스카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면서, 1959 1 3일 마침내 미국의 49번째 주로 정식 승격되었다. 수어드의 결단은 뒤늦게 재평가되었고, 매년 3월 마지막 월요일은 수어드의 날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초기 비난과 조롱을 견디며 국익을 위해 정치적 좌절을 감수한 수어드는 선견지명을 가진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1896년 클론다이크와 노움 지역에서 대규모 금광이 발견되며 골드러시가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알래스카로 몰려들었고, 금 채굴로 엄청난 부를 창출했다. 이후 은, 구리, 석탄 등 각종 광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알래스카에는 전 세계 석탄의 10분의 1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세기 중반 프루도만과 노스슬로프에서 막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며 알래스카는 미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1977년 노스슬로프에서 태평양 연안 밸디즈까지 잇는 송유관이 완공되었다. 알래스카에서 채굴한 철의 가치만 해도 당시 4천만 달러에 달했고, 전체 자원 가치는 수십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소유한 지 50년 만에 매입 비용의 1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알래스카 매입은 유럽 열강의 북미 지배 구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러시아 제국이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완전히 철수하며, 미국은 태평양 연안 국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냉전 시대에는 알래스카가 소련에 대한 감시 기지 역할을 했다. 베링 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불과 85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알래스카는 북미 항공우주 방위사령부(NORAD)의 핵심 거점이 되었다. 만약 알래스카가 소련 땅으로 남아 있었다면, 수천 기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배치되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알래스카 매각 후 러시아는 동아시아 진출에 더욱 집중했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획득한 러시아는 한반도의 부동항을 이용해 중국 해안으로 뻗어나가려 했다. 알래스카 매각 대금은 러시아의 아시아 전략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조롱에서 찬사로 변화한 평가와 국토의 중요성

1867년의 알래스카 구입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2025년 현재, 알래스카는 북극권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다. 기후 변화로 북극해 항로가 열리면서 러시아,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통해 북극권 개발과 안보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 해빙, 해수면 상승 같은 기후 변화 문제는 전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다. 최근 러시아 일각에서 알래스카는 우리 땅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상징적 언급에 불과하다.

알래스카 구입은 미국의 영토 확장사에서 중요한 이정표였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광대한 영토를 확보함으로써 미국은 북태평양과 북극해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에는 수어드의 바보짓이라는 조롱을 받았지만, ,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이 뒤늦게 증명되며 신의 한 수로 재평가되었다. 오늘날 알래스카는 석유·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연자원과 북극권 전략 요충지로서 미국의 군사·경제적 핵심 지역이다. 원주민 권리, 자원 개발과 환경 보호의 균형, 기후 변화 대응 등 현대적 과제들도 안고 있다. 수어드 국무장관의 혜안은 단순한 영토 확장을 넘어,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보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역사는 때로 즉각적인 여론이 아니라 긴 시간의 검증을 통해 그 진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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