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삼복책방
창작의 단초가 될 ―/세계사 한 꼭지

[1월 26일(1950)] 제국의 식민지에서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도 공화국 선포

by △삼복△ 2025. 7. 8.

1950 1 26, 세계 최대 인구의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하다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가 인도 최초의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
'자와할랄 네루' 인도 초대 총리가 인도 최초의 헌법에 서명하는 모습 |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자유와 주권의 여정

1950 1 26일 오전 10 18, 뉴델리의 정부청사 듀르바르 홀에서 역사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인도가 공식적으로 주권적, 민주적 공화국임을 선포한 것이다. 이날 인도는 영국 국왕을 명목상 국가원수로 둔 입헌군주제를 완전히 벗어나 자체 헌법과 대통령을 가진 독립적인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200년간의 식민지 지배와 독립 후 2년 반의 과도기를 거쳐 마침내 완전한 자주국가로 탈바꿈한 순간이었다.

 

배경 - 독립을 향한 염원과 분열의 그림자

   식민지 지배의 유산

인도의 영국 식민지 지배는 18세기 후반 동인도회사의 무역 거점 설치로 시작되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을 기점으로 영국 왕실의 직접 통치가 시작되었고, 이후 약 200년간 브리티시 라지라 불리는 식민체제가 지속되었다. 경제적 수탈과 정치적 억압 속에서 인도인들의 저항 의식은 점차 고조되었다.

   독립운동과 지도자들

19세기 말 인도 국민회의(INC)가 결성되면서 조직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과 자와할랄 네루의 정치적 지도력은 독립운동의 핵심이었다. 특히 1930년 인도 국민회의가 푸르나 스와라지(완전한 자치)’를 선언한 것은 이후 공화국 선포 날짜 선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2차 세계대전과 독립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재정적 어려움과 국제 정세 변화는 인도 독립을 가속화시켰다. 1947 8 15일 인도는 독립을 달성했지만, 힌두교와 이슬람교 간의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독립 직후 인도는 여전히 영국 국왕을 명목상 국가원수로 하는 도미니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헌법 제정의 필요성

진정한 독립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자체 헌법과 공화국 체제가 필요했다. 1946년 구성된 제헌의회는 독립 이후 본격적인 헌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인도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B.R. 암베드카르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 제정위원회가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전개 - 공화국 탄생까지의 여정

   1946 12

독립을 앞둔 인도에서 새로운 헌법 제정을 위한 제헌의회가 구성되었다. 이는 식민지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 건설을 위한 첫 번째 단계였다.

   1947 8 15

인도가 마침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인도는 여전히 영국 국왕을 명목상 국가원수로 하는 도미니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고, ‘자와할랄 네루가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1947 8 29

독립 이후 본격적인 헌법 제정 작업을 위해 인도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B.R. 암베드카르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 제정위원회가 공식 구성되었다. 이들은 민주주의, 세속주의, 사회정의, 평등의 원칙을 담은 헌법 초안 작업에 착수했다.

   1948 2 21

헌법 제정위원회가 오랜 논의와 작업을 거쳐 인도 제헌의회에 헌법 초안을 제출했다. 이후 광범위한 토론과 수정 작업이 진행되었다.

   1949 11 26

제헌의회가 2 11개월 18일간의 치열한 심의를 마치고 인도 헌법을 공식 채택했다. 헌법 시행일은 1950 1 26일로 결정되었는데, 이는 1930년 인도 국민회의가 푸르나 스와라지(완전한 자치)’를 선언한 바로 그 날짜였다. 독립운동의 상징적 의미를 헌법 발효일에 담아 낸 것이다.

   1950 1 24

라젠드라 프라사드가 인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는 인도가 더 이상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두지 않고 자체적인 국가원수를 선택했음을 의미했다.

   1950 1 26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했다. 오전 10 18, 뉴델리 정부청사 듀르바르 홀에서 공화국 선포식이 거행되었고, 인도 헌법이 공식 발효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포괄적인 헌법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 헌법과 함께 라젠드라 프라사드 초대 대통령이 취임했다. 선포식 이후 5마일에 이르는 행진과 21발의 예포가 울려 퍼지며 인도 공화국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이로써 200년간 이어진 영국 국왕과 총독 체제가 완전히 종료되었다.

 

결과와 변화

   정치적 변화

인도 헌법은 시민들에게 자신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하고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 의원내각제 기반의 입헌 공화국 체제가 확립되었고, 삼권분립 원칙이 명문화되었다. 보편적 성인 선거권과 다당제가 보장되면서 인도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잡았다. 매년 1 26일은 공화국의 날로 지정되어 인도 최대의 국경일 중 하나가 되었다.

   사회적 변화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평등권 등을 보장했다. 특히 세속주의 원칙은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인도 사회의 정체성을 뒷받침했다. 카스트 제도에 기반한 차별 금지와 사회적 약자 보호 조항들이 포함되어 사회 정의 실현의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빈부 격차, 카스트 차별, 젠더 불평등 등의 과제가 남아 있었다.

   국제적 변화

공화국 선포는 인도가 주권적 민주 공화국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영국과의 식민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면서도 영연방 회원국으로 남아 국제적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이는 과거 식민 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국제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인도는 비동맹운동의 주요 국가로 부상하며 냉전 시대 제3세계 국가들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4억 인구의 글로벌 강국의 미래

1950 1 26, 인도 헌법이 발효되면서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2025년 현재 인도는 세계 5위권 경제 대국이자 14억 인구를 가진 글로벌 강국으로 성장했다. G20, BRICS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공화국 선포 75년이 지난 지금도 1950년 헌법에 담긴 민주주의, 세속주의, 사회정의의 가치는 여전히 인도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원리다. 물론 힌두 민족주의의 부상, 종교 갈등, 경제적 불평등 등 새로운 도전도 있지만, 헌법적 가치는 인도 사회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매년 1 26일 뉴델리에서 펼쳐지는 대규모 공화국의 날 기념행사는 단순한 국경일 행사를 넘어 인도가 지향하는 가치와 비전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식민지에서 공화국으로, 분열에서 통합으로, 종속에서 자주로의 여정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1950 1 26일의 공화국 선포는 인도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자주적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으며, 그 의미는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 관련 글

[1월 19일(1966)]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 취임

 

[1월 19일(1966)]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 취임

1966년 1월 19일, ‘인도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네루-간디 가문’이 배출한 최초의 여성 총리: 인디라 간디 아시아 정치사에 의미 있는 변화1966년 1월 19일, 인도 뉴델리에서 ‘인디라 간디

sambok-cb.tistory.com

[1월 4일(1972)] 홍콩의 운명을 바꾼 변화: “영국의 마지막 홍콩총독 파견 발표”

 

[1월 4일(1972)] 홍콩의 운명을 바꾼 변화: “영국의 마지막 홍콩총독 파견 발표”

1972년 1월 4일, 홍콩 반환의 시작: “영국의 마지막 홍콩총독 파견 발표” 한 줄의 발표가 바꾼 홍콩의 운명1972년 1월 4일, 영국 정부는 한 줄의 간단한 발표를 통해 홍콩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

sambok-cb.tistory.com